지식상식

삼배구고두례 의식

꼴두바우 2017. 11. 24.

중국 청나라에서 황제나 대신을 만났을 때 머리를 조아려 절하는 예법으로

세번 절을 하게 되는데, 한번 절을 할 때마다 이마를 바닥에 부딪칠 정도로

세번이나 머리를 조아리는 방식을 '삼배구고두례 의식'이라고 합니다.

 

 

삼배구고두례는 한번 큰절을 올린 다음 이마가 바닥에 부딪치도록 세번을

반복해 조아리고, 다시 두번째 큰절을 올린 다음 이마가 바닥에 부딪치도록

세번을 반복해 조아리고, 마지막으로 세번째 큰절을 올린 다음에도 이마가

바닥에 부딪치도록 세번을 반복해 조아리는 방식으로 절을 하게 됩니다.

 

 

 

청나라가 1636년 전쟁을 일으켜 조선에 쳐들온 것을 병자호란이라 하는데,

전쟁에 항복한 조선의 임금인 인조는 1637년 1월 30일 곤룡포(임금의 의복)

대신 쪽빛 평민복을 입고 맨발로 삼전도(현재 서울시 송파)에 있는 청 태종의

군막까지 걸어가 이마에 피가 흐르도록 청 태종에게 이른바 삼배구고두례를

올리는 치욕을 겪었는데, 이 치욕을 삼전도 굴욕이라고 합니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조선에 조공을 바치던 여진족은 급속히 성장해 후금을

건국하고 세력을 확장하여 청나라를 세웠습니다. 당시 조선의 임금인 인조는

청나라를 멀리하고 명나라를 따르는 외교정책을 펼쳤는데, 결국 1636년 12월

청나라 태종이 12만의 대군을 이끌고 직접 조선으로 쳐들어와 병자호란으로

불리는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인조는 왕족들과 여러 신하들을 강화도로 보내고 뒤이어 피신하려다

청나라 군사들이 강화도로 가는 길을 막아서자 한양 근처인 남한산성에 피신

했지만 그 이듬해 1월 강화도가 함락되고 식량도 바닥나자 청나라에게 항복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항복의 예로써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큰절을 한번 할 때마다 피가

나도록 이마를 세번씩이나 바닥에 찧어 총 9차례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충성을 맹세하는 치욕(삼전도 글욕)을 겪게 된 것입니다.

 

 

그후 조선은 명나라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청나라에 복종하면서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조의 두 아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인질로

청나라에 갔으며, 1639년에 청나라의 요구로 청 태종의 침략을 공덕이라고

예찬하는 '삼전도비'를 세우는 치욕을 당하고, 수많은 조선의 여인들이

청나라로 끌려가 치욕적인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세계 정세에 어두운 무능한 임금과 무능한 신하들이 결국 치욕적인 역사를

만들고 백성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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