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상식

이순신 장군 업적 및 3대대첩

꼴두바우 2017. 8. 3.

이순신 장군은 우리나라 국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도 존경받는 정말로

위대한 장군입니다. 이순신 장군 업적은 임진왜란 당시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스물세번을 싸워 스물세번을 모두 승리하는 신화를 남김은 물론, 전쟁의 크나

큰 승리인 3대대첩을 이룩해 나라를 지켜냈다는 것일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 3대대첩은 '한산도 대첩, 명량 대첩, 노량 대첩'이며, 대첩이란 전쟁

에서 아주 큰 승리를 거둠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한성 건천동(서울

인현동)에서 1545년(인종 1년)에 태어났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가족은 이순신

(1545~1598)이 8세 때 외가가 있는 충남 아산(지금의 현충사)으로 이사하였고,

이순신은 무예를 익혀 1576년(선조 9년) 무과시험에 급제하였습니다.

 

 

이순신은 무과시험에 급제한 후 함경도 조산보 만호로서 오랑캐를 무찔렀습니다.

그후 정읍 현감 등의 벼슬을 거쳤고, 유성룡의 추천으로 전라좌도 수군통제사가

되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스물세번 싸워 스물세번을 모두 승리하는 신화를

남기게 된 것입니다. 이순신장군 업적은 어떤 말로 형용해도 그 공을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이순신 3대대첩을 통해 그의 업적을 알아보겠습니다.

 

 

<이순신 장군 3대대첩>

1. 한산도 대첩

한산도 대첩에서는 견내량에 모여있던 왜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여 학익진

으로 왜선 100여척을 격침시키고 1만여명의 적군을 전사시켰습니다. 반면에

조선군은 단 한척의 배도 잃지 않고 전사는 19명이고 부상은 115명이었습니다.

 

 

학익진은 학이 날개를 펴고 나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 진법은

거북선이 앞장서서 돌격하고 그 양쪽으로 판옥선들이 따라가다가, 적의 배가 있는

곳에 다다르면, 여러 척의 판옥선들이 학 날개 모양으로 퍼져서 적군을 둘러싸고

공격하는 진법입니다.

 

 

2. 명량 대첩

그 후 원균의 모함으로 죽음의 위기를 넘긴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 (벼슬없이

군대를 따라 싸움터로 감)했다가 다시 삼도 수군통제사로 임명되었고, 1597년

9월 16일, 단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과 맞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 때 장군은

왜군을 울돌목으로 유인하여 120여 척의 왜선을 격침시키는 기적같은 승리를

이루었는데요, 이를 명량 대첩이라고 합니다.

 

 

3. 노량 대첩

장군의 마지막 전투는 1598년 11월 19일에 있었는데요, 바로 노량대첩입니다.

장군은 도망치는 왜군을 쫓아 노량에서 500여 척 중 450여 척을 격침시키는

대승을 거두었지만, 이 싸움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시면서 조국에 최후의

승리를 바치셨습니다.

 

 

<그외 이순신 장군 주요 승리>

1. 옥포 해전

장군의 첫 승리는 옥포 해전인데요, 조선 수군은 지금의 거제도 장승포 앞바다인

옥포에서 왜선 30여 척 중 26척을 격파하고 왜군 4,000여 명을 전사시켰지만,

조선 함대의 피해는 단 한 척도 없었습니다.

 

2. 사천 해전

사천 해전에서는 거북선의 위력을 처음 선보였습니다.

 

3. 당포 해전

10여 일간에 걸쳐 계속된 당포해전에서는 72척의 왜선을 격파하고 1만여명의

왜군을 전사시키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바다의 영웅인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현충사에서 장군의 위대한

정신과 혼을 느끼고 싶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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