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상식

서상돈 주관 국채보상운동 간략 설명

꼴두바우 2019. 5. 14.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으로부터 빌린 차관 1,300만원을 갚기 위해 전 국민이 참여해

성금을 모금한 국권회복운동입니다. 서상돈 등은 일본에서 빌린 차관을 갚고자

'국채보상기성회'를 조직했으며, 대한매일신보, 제국신문, 황성신문 등의 언론기관도

앞장서고 전 국민이 참여한 가운데 1907년 2월부터 1908년 7월까지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민족경제자립운동이자 국권회복운동으로써 전국민이 참여했지만

일제와 일진회의 방해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 서상돈(1851. 10. 17일~1913. 6. 30)은 경상도 시찰관을 역임했으며, 독립운동가로

활약했음.

 

일본은 조선정부를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려고 차관을 제공했는데, 이를 갚고 조선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서상돈 등이 조직한 국채보상기성회와 언론 그리고 전 국민이

참여해 '성금모금운동'을 전개한 것입니다. 우리가 IMF 때 전개한 금모으기 운동처럼

반지와 비녀까지 팔아 성금을 모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통감부의 압력과 매국적 정치단체인 일진회의 방해로 계속 추진하지

못하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일진회란 대한제국 시대의 친일단체로서 을사조약

지지 선언, 고종 퇴위 강요, 한일합방 주장 등의 친일 행각을 벌린 천인공노할 매국

단체입니다.

 

그후 1922년에는 조만식을 중심으로 물산장려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 운동 역시

민족경제자립실천운동으로써, 일제의 경제적인 수탈에 맞서 국산품 애용, 근검절약,

자급자족, 민족기업 육성 등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과 방해로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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