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상식

조선 성종대 폐비 윤씨 사사사건 (연산군 어머니 폐비 윤씨 사약 사건)

꼴두바우 2023. 9. 9.

조선 성종대 폐비 윤씨 사사사건 (연산군 어머니 폐비 윤씨 사약 사건)은 폐비 윤씨가 성종의 용안에 손톱자국을 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윤씨(미상~1482, 성종 13년)는 성종의 후궁으로 입궐하여 숙의에 봉해졌고, 이듬해 한명회의 둘째 딸인 공혜왕후가 죽자 왕비에 책봉되었습니다.

 

 

그리고 중전에 오르던 해 훗날 연산군인 융을 낳으며 성종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질투심이 많고 사나워 분란을 자주 일으켰습니다. 1477년 후궁들을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빈으로 강등될 뻔하였고, 1479년에는 급기야 후궁들의 문제로 성종과 말다툼을 하다가 성종의 용안에 손톱으로 생채기를 내는 불경죄를 저질렀습니다. 

 

 

이 일로 크게 화가 난 성종과 인수 대비는 윤씨를 왕비에서 폐하여 서인으로 낯추어 대궐 밖으로 내쫓았는데, 그 뒤 후궁의 음모로 1482년 결국 연산군 어머니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리는 폐비 윤씨 사사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인물이 뛰어난 숙의 윤씨는 성종의 사랑을 받아 왕자 융(홋날 연산군)을 낳았습니다. 한명회의 딸인 공혜왕후 한씨는 자식도 남기지 못하고 1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숙의 윤씨가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왕자는 강희맹의 집에서 키우도록 하였습니다.

 

숙의 권씨, 숙의 엄씨, 소용 정씨는 숙의 윤씨가 왕비가 되자 질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윤비를 내쫓으려고 인수대비(성종의 어머니)를 자주 찾아가 헐뜯었고, 인수대비 또한 윤비를 차차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한편, 윤비는 자신을 헐뜯는 그들을 없애려고 비상(독약)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어느날 성종이 윤비를 찾았습니다. 윤비는 토라져 있었고, 성종은 두리번거리다 책상 위에 있는 주머니를 풀어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비상이 아니오? 무엇에 쓰려고?" "정 소용과 엄 숙의가 원자를 죽이려고 하여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사옵니다."

 

성종은 이 일을 크게 문제삼지 않고 비상을 들여온 몸종을 처형하였으며, 윤비의 어머니인 신씨를 대궐 안에 드나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성종은 윤비를 전혀 찾지 않았습니다.

 

 

세 후궁은 계속 윤비를 헐뜯었고 인수대비 또한 윤비에 대한 미움이 날로 커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문안 인사를 하러 온 성종을 보고 놀랐습니다. "용안(임금의 얼굴)에 웬 상처요?" 성종은 지난 밤에 윤비를 찾았다가 세 후궁 때문에 말다툼 하였고, 뿌리치는 손톱에 얼굴이 스쳐서 상처가 난 것입니다. 

 

 

인수대비는 그것을 알고 펄펄 뛰었습니다. "국모가 비상을 구해 갖지를 않나, 상감의 용안을 손톱으로 할퀴지를 않나?" 인수대비는 우의정 윤필상을 불러 용안의 상처에 대해 중신들과 의논하라고 하였고, 윤필상은 은근히 좋아했는데요, 자신의 친척인 윤호의 딸이 후궁 숙의로 있었는데, 잘만 하면 왕비로 앉힐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윤비의 폐비 문제가 조정에서 논의되었고,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종은 1479년 6월에 왕비 윤씨를 서인으로 낮추어 대궐 밖으로 내쳤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1월에 윤호의 딸인 숙의 윤씨를 새로운 왕비로 맞았습니다.

 

쫓겨난 윤씨는 그 뒤 3년 동안 잘못을 뉘우치며 비참하게 지냈습니다. 어느날 성종이 폐비 윤씨에게 내린 하사품을 가지고 내관이 폐비를 찾아갔는데요, 소용 정씨의 뇌물을 받은 내관은 성종에게 폐비 윤씨가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다고 거짓으로 고했습니다. "조금도 뉘우침 없이 잘 먹고 잘 지내며 전하를 원망하고 있사옵니다."

 

 

성종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죄만 뉘우친다면 대궐로 다시 불러들여 동궁(연산군)의 외로움을 풀어 줄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잠시 후 내관은 소용 정씨가 일러 준 대로 말했습니다. "동궁 저하께서 즉위하실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줄로 아뢰오."

"하면, 그 때 가서 앙갚음을 하겠다는 말이 아니냐? 악독한 것!" 이튿날, 성종은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리라는 어명을 내려 좌승지 이세좌가 받들었습니다. 성종의 하사품을 받은 폐비 윤씨와 어머니 신씨는 대궐로 돌아갈 희망에 부풀어 있다가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사약을 받으려면 목욕을 하고 옷을 단정히 차려 입은 뒤에 약사발을 상에 받아 놓고, 임금이 있는 쪽을 향해 세 번 절하고 나서 반듯이 앉아 사약을 마셔야 했습니다. 윤씨는 절차를 밟고 사약을 마셨습니다.

 

사약을 마신 윤씨의 옷이 코와 입에서 나온 피로 물들었습니다. 윤씨는 소매 끝에 달린 한삼을 뜯어 어머니에게 건넸습니다. "이걸 동궁에게..." 윤씨는 쓰러졌고 어머니 신씨는 피 묻은 한삼 자락을 받고 통곡하였습니다.

 

 

이세좌를 비롯한 나졸들이 대수롭지 않게 본 피묻은 한삼 자락은 훗날 피비린내 나는 갑자사화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폐비 윤씨를 사사한 사건이 훗날에 갑자사화를 불러 온 것입니다.

 

이상으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끝. 

반응형

'지식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샤이하다 뜻 샤이보이 샤이가이 뜻  (1) 2023.11.03
어엿한 뜻 어엿한 비슷한 낱말  (0) 2023.10.20
오지랖 떨다 뜻  (0) 2023.09.03
리얼하다는 뜻  (0) 2023.08.17

댓글